[칼럼 21] 에셀나무를 심는 믿음의 웰에이징
- Jae Kim
- 2024년 10월 29일
- 2분 분량

필자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미국 신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잘해낼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도 컸지만 돌이켜보면 그때가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낮에는 수업을 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잠도 부족하고 힘도 들었지만, 수도원 같은 캠퍼스 건물 사이를 지나며 느끼던 고요함과 거룩함의 감동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특별히 생각나는 것은 학교 교정에 군데군데 벤치가 있었던 것이다. 서늘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나무 그늘 아래 있는 벤치에 앉아 푸른 교정을 바라보는 일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 벤치들은 대부분 졸업생이나 혹은 학교를 사랑하는 누군가의 도네이션 즉 기부금으로 설치된 것이었다. 한번도 본 적도 없는 분들이지만 이런 안락함을 누리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잊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잊혀지지 않는 감사한 일이 또 있었다. 그것은 신학생을 위한 장학금 제도였다. 학교에는 참 많은 장학금이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주 평범한 할머니들이 매년 기금을 마련하여 장학금을 수여하는 시간이었다. 그날은 이분들이 직접 학교를 방문하여 장학금 수령자들과 점심 식사를 같이 하며 대화도 나누고 격려하는 시간을 가진다. 하얀 머리에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지만 어린 아이들과 같은 해맑은 웃음과 함께 정성스럽게 모은 장학금을 전달받을 때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장학금이 얼마였는지는 기억에 없짐나, 식사를 마치고 떠나시며 손을 흔들어 주시던 그분들의 정겨운 얼굴은 잊혀지질 않는다.
이런 기억들 덕분에 나눔과 베품이 우리 삶에 얼마나 소중한지를 필자는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목회 현장에 있을 때 마음에 감동이 오는 대로 이런저런 분들에게 귀한 장학금 사역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독려하였다. 어려운 부탁처럼 들릴 수도 있었지만 선뜻 참여하시는 모습에 감사하였고 그 또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되었다. 결과는 받는 자나 주는 자나 그리고 전하는 자나 모두 기쁨이 충만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축복의 통로로 사는 삶이 얼마나 풍성하고 아름다운 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 경험들 때문에 필자는 한발짝 더 나아가게 되었다. 이런 나눔과 헌신을 교회적인 문화로 자리잡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시니어분들이 교회를 위해 특별한 헌금을 하실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였다. 이 헌금을 ‘느헤미야 펀드’라고 이름 지었는데 그 이유는 느헤미야가 허물어진 성벽을 재건한 것처럼, 교회 곳곳을 보강하고 새롭게 구축하는 특정한 프로젝트에만 사용하고자 함이었다. 그 헌금은 일반 재정으로 쓰여지지 않고 이름 그대로 ‘느헤미야’ 계정으로 별도 관리하였다. 놀랍게도 시니어분들의 참여가 해마다 이어졌고 이제는 시니어들의 ‘문화’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믿음 안에서 웰에이징이란 나눔과 베품의 마음이 성장하고 성숙되어 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겠다. 그것은 금액의 많고 적음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며 그것을 어디론가로 흘려보내는 믿음의 실천이며 이땅의 것에 집착하려는 우리들의 속성을 씻어내는 훈련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땅의 삶을 계속 이어가야 할 우리들의 후손들을 생각하는 배려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런 마음들을 구체적인 사랑의 선물로 남기는 후반전 인생이 되기를 소망한다.
아브라함도 백세가 되어 아들을 낳고 브엘세바 지역에 자기 소유의 땅 덩어리 하나를 얻게 된다. 창세기 21장이 그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뭇별과 같은 자손과 동서남북에 걸친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하나씩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제 비로소 자기 소유지가 된 브엘세바를 약속의 땅으로 확정하고 기념하는 의미에서 에셀나무를 심었다. 척박한 땅에 에셀나무를 심은 또 다른 이유는 지나는 과객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려는 아브라함의 생각도 있었을 것이라 학자들은 말한다. 에셀나무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과 이웃에게 그 은혜를 흘려보내는 믿음의 이야기가 남게 된 것이다.
우리도 우리 인생 가운데 믿음과 사랑의 그늘을 남기는 에셀 나무를 심었으면 좋겠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에게 시원한 그늘을 끼치는 일들을 생각해보자. 아니 시원한 냉수 한 잔이라도 건내보자. 갑작스런 질병으로 몸져 누은 친구가 있다면 한번 찾아가보자.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담은 꽃바구니라도 전해보면 어떨까? 교회를 돌아볼 때 우리 믿음의 후손들을 위해 마련해주면 좋은 것들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고 선물해보자. 그들 마음에 에셀나무가 자라게 될 것이다. 텃밭에 에셀나무 묘목을 키우는 우리들의 인생후반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