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6]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과 작별하는 웰에이징
- Jae Kim
- 2024년 6월 15일
- 1분 분량
시니어 사역자로 섬겼던 교회가 상당히 큰 이민교회였다. 주일 예배 출석 인원 가운데 65세 이상의 고령자들만 600명이 넘는 대형교회였다. 그런 까닭에 장례 예배도 많이 치룰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니어들의 임종 예배를 집례하거나 참석하면서 종종 보는 모습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순간인데 아들이 나타나질 않는 것이다. 때로는 딸이 나타나질 않는 것이다. 늦게 도착했다는 뜻이 아니라 아예 장례식장에 오질 않는 경우들이었다. 알고보니 아버지 혹은 어머니와의 갈등이 너무 깊어 그동안 연락을 끊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정말 뜻밖의 모습이고 무척 당황스런 순간이었다.
왜 이런 형편이 되었는지 유가족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사소한 문제들로 인해 부모와 자녀가 등을 지게 된 것이다. 사연을 정리해보면 관건은 이것이었다. 부모님의 뜻과 기대에 부응하지 않고 내 뜻대로 하겠다고 고집하는 자녀들과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결국 자녀들은 떠나가 버리고 부모님들도 못내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자녀와 아예 담을 쌓아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결국 임종의 순간까지 서로 외면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는 물론 많지 않지만 자녀와 부모들의 갈등은 외면상 감춰진 가운데 속으로 곪아있는 가정들이 생각보단 많았고, 더구나 교회 중직자들의 가정에도 이런 아픔과 위험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정을 알면서 그런 마음이 들었다. 불편한 가족 관계를 남기고 죽음을 맞이할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감춰둔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을 살아있을 때 털어버리고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지난 일은 지난 것으로 흘려보내고 부모님과 자녀로 다시 행복한 만남을 회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인생후반전이 되겠는가! 그 길이 진정한 웰에이징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갖게 되는 소망이 있다. 나이들어 가면서 해마다 우리 마음을 좀 넓혀보자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서운하고 섭섭한 감정들을 많이 얘기하는데 (재밌는 것은 서운하다, 섭섭하다는 감정은 영어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인 특유의 감성이라고 생각된다) 나이가 들어가며 이런 상한 감정들과 이별하자는 것이다.
서운하고 섭섭한 감정도 더 깊이 들여다보면 뭔가 내 기대치에 혹은 내 기준에 못 미친다고 판단될 때 생겨나는 불편한 감정이다. 이런 실망스런 감정을 처리하려고 상대방을 내 기준에 맞춰 억지로 끌어당기다 보면 서로 더 큰 상처만 남기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땐 차라리 내 기대치를 낮추고 경계선을 넓혀서 상대방을 받아드릴 수 있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서로 평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뜻하지 않은 갈등을 맞게 되었다. 서로 양떼가 많아져서 초장을 두고 일꾼들 사이에 다툼이 이어지는 것이다. 한국 정서로 얘기하자면 숙부와 조카가 갈등을 일으키면 나이 어린 조카가 숙부에게 사죄하고 문제 해결의 선택권을 어른께 드리는 것이 예법일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런 해법을 고집하지 않고 ‘친족 간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막자’는 큰 틀을 가지고 조카에게 우선권을 양보하기까지 하였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는 포용책을 내어 놓은 것이다.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에 조카와 원수로 등을 지는 것이 아니라, 친족이라는 넓은 테두리 안에 조카를 품어 준 것이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나? 서로 아름다운 이별을 하게 되었고 이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상상 이상의 비전과 언약으로 위로하시는 것을 본다.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격하여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는’ 신실한 예배자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고 믿음의 조상으로 성숙할 수 있었다. 만약 아브라함이 서운하고 섭섭한 감정에 머물렀다면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웰에이징은 인격의 성숙과 성장을 동반하는 여정이 되어야 한다. 특별히 사람들에 대한 관용의 덕목이 나이와 함께 더욱 깊어지기를 소망한다. 이것은 젊은 시절부터 기억하고 기도하며 닮아가야 할 그리스도의 성품이다. 두려운 사실은 에이징은 우리 육체 만이 아니라 감성과 인격에도 노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자기 성찰과 변화의 의지 없이 나이만 많아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협한 ‘노인’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어갈 수록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가운데 더욱 관용하고 용서하는 성품의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바뀌고 성품이 변화되는 일은 기도라고 하는 노동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기도를 통해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과 작별하는 웰에이징의 여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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